얀치홀트 JAN TSCHICHOLD

Germany
1902 - 1974

전통타이포그래피를 신타이포그래피와 조화시킨 독일의 디자이너로써 20세기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체계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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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enguin Books (1947-1949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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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onstruktivisten (1937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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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ie Frau ohne Namen (1927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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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ypographische Mitteilungen (1925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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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ie Kameliendame Poster (1927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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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 타이포그래피의 강력한 지지자 막스 빌. 그는 신타이포그래피를 탄생시킨 얀 치홀트를 존경했습니다. 그런데 어느 날, 그는 얀치홀트를 비난하기 시작했죠. 도대체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요 ?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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얀 치홀트는 레터링 아트스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. 그가 타이포그래퍼가 된 건 운명이였죠. 그는 바우하우스 전시회를 관람하게 되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됩니다. 여기서 그는 산업혁명과 같은 새로운 혁신들을 인식하고 이러한 통찰을 그래픽 디자인에 적용시켰죠. 바로 여기서 강력한 신 타이포그래피가 탄생하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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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 타이포그래피는 가장 명료한 디자인입니다. 모든 요소들은 기능적이여야 했죠. 그래서 이유없는 장식적인 것들은 모두 배제되었습니다. 이러한 완벽한 이론을 바탕으로 얀치홀트는 성서를 만들어 강력히 주장했습니다. 그 성서는 삽시간에 유럽,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되죠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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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, 구 타이포그래피와 결별을 선언했던 그는, 다시 전통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연구로 돌아가게 됩니다. 신 타이포그래피에선 느낄수 없었던 인간적인 우아함을 느꼈기 때문이죠. 이 때 많은 신 타이포그래피 지지자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. 하지만 얀치홀트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갔습니다. 신 타이포그래피와 전통 타이포그라피를 융합시켜 또 한번 시대를 바꾼거죠. 이 연구에서 나온 서체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봉 서체입니다. 그가 평생에 걸친 연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대표적인 서체이죠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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얀치홀트는 일생 동안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식견을 잃지 않았던 사람입니다. 그래서 타이포그래피가 더욱 전문적인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죠. 그는 말했습니다. ‘나의 실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결실을 낳았다고. 이 사람이 바로 역사를 두번이나 바꾼 혁명가 얀치홀트입니다.

BOOK / PAPER / WEBSITE

얀치홀트 (2006), Typographische Gestaltung, 안상수 역, 타이포그라픽 디자인, 안그라픽스
김현미(2000), 신타이포그라피, 디자인하우스
안상수(1997), 얀치홀트의 <신타이포그라피>에 관한 연구, 홍익대학교 대학원 : 시각디자인과, 석사학위논문.
Wikipedia(2001), http://ko.wikipedia.org/wiki
네이버 캐스트(2011), http://navercast.naver.com/contents.nhn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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